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도 부끄러운 오점을 남겼다. 대명천지에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가 발길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주권을 행사하려 했던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참정권을 거부당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나 일선 직원의 실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신성한 약속을 저버린 중대한 ‘국가적 기능 부전’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사태 직후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선거를 총괄하는 전문 기관이 투표용지 수요 예측과 수급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대체 그동안 무엇을 관리하고 준비했다는 말인가. 최근 몇 년간 선관위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보안 취약점 논란 등 각종 부실 운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때마다 신뢰 회복을 외쳤지만, 결과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탄식뿐이다. 선거 행정의 기본기가 통째로 무너진 셈이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 미증유의 사태를 대하는 정부와 집권여당의 태도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국민의 참정권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제1 책무다.
그럼에도 여당은 선거가 끝났다는 이유로, 혹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핑계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주체로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책임이다. 시스템이 무너졌는데 침묵하는 것은 방관을 넘어선 직무유기다.
이번 ‘투표용지 대란’은 단순히 한 번의 소동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선거 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정당성마저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변명 뒤에 숨지 말고, 전면적인 인적·시스템적 혁신에 나서야 한다.
첫째,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우선이다. 어느 투표소에서 왜 용지가 부족했는지, 데이터 오류였는지 관리 소홀이었는지 보고 체계의 공백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둘째, 선거 관리 시스템의 현대화와 다중 검증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투표율 추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잔여 용지를 파악하고 인근 투표소와 연동할 수 있는 스마트 수급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셋째, 선관위 내부의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외부 감시 강화가 필요하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선거 참사를 막을 수 없다.
국민은 특혜나 변명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책임 있는 자세와 실질적인 변화만을 요구할 뿐이다.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던 국민들의 발걸음을 헛되게 만든 이번 사태에 대해, 선관위와 집권여당은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참정권은 그 어떤 행정적 안일함으로도 침해될 수 없는 국민의 절대적 권리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증명하라.
손삼호 (울산 동구 시민사회 활동가 · 나라사랑무궁화보급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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